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서태지와 아이들 (문단 편집) == 계승되는 정신, 서태지와 아이들 기념사업회 == * [[http://www.seotaiji-archive.com/xe/index.php?document_srl=385793&mid=memorial&m=1|서기회 활동 시절 기록들]] 하지만 이들이 남긴 자유와 도전정신은 죽지 않았다. 은퇴한 지 두어 달 뒤인 [[1996년]] [[3월]], 비영리단체 '서태지와 아이들 기념사업회(이하 서기회)'가 발족되어 전국적으로 13,000여 명을 두었다. 초대 회장이던 강민경은 <내일신문> [[1996년]] [[12월 4일]]자 48면 인터뷰 기사에서 서기회가 팬클럽이 아닌 서태지의 뜻을 이어받은 문화단체라 하여 "맹목적인 열광이 아닙니다. 서기회 회원들은 모두 '태지보이스 팬답게 '''행동'''하자'는 말을 잊지 않습니다"라고 밝혔다. 이들의 활동은 [[1996년 노동법 날치기]] 때 PC통신상의 활동에서 드러났다. '잘못된 건 잘못됐다고 얘기하는 게 서태지와 아이들의 정신'이라는 믿음으로 [[https://newslibrary.naver.com/viewer/index.nhn?articleId=1997011000289127002&editNo=5&printCount=1&publishDate=1997-01-10&officeId=00028&pageNo=27&printNo=2774&publishType=00010|블랙리본 내걸기를 제안했고,]] 사회문제란인 '시대유감'과 '왜 바꾸지 않고 남이 바꾸길 바라는가'란 토론방에서 10~20대의 젊은 회원들이 총파업 지지글을 올리는 등 사회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기도 했다. 같은 시기 나우누리의 서태지와 아이들 팬클럽도 "태지보이스가 그렇게 부르짖던 자유와 도전은 모두 민주주의 아래서만 가능한 일입니다. 이에 우리는 비민주적이고 국민을 기만한 노동법/안기부법 개악을 개탄하며 민주주의의 죽음을 진심으로 애도하는 바입니다"라고 하여 '근조 민주주의'라고 적힌 검은 리본을 내걸었다. 한편 같은 해 [[7월 30일]]에 [[새정치국민회의]] [[김대중]] 총재도 당사 총재실에서 서기회가 준비한 영상 콘서트 축하 메시지[* 당시 1부는 1~4집의 베스트 뮤직비디오들을 상영하였으며, 2부는 초대가수 공연 및 모창대회, 유명인사 축하메시지 상영으로 각각 이루어졌다.]를 녹화하면서 "서태지와 아이들은 좋은 의미에서 우리나라 신세대의 대표적 존재로 보며 소중히 생각한다"며 "서태지와 아이들은 은퇴했지만 예술인이란 대중의 사람으로 대중이 원하면 하루 속히 복귀하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"고 했다. 그는 특히 서태지와 아이들의 대표곡 <발해를 꿈꾸며>에서 "언젠가 우리 작은 땅에 경계선이 사라지는 날, 갈려진 땅의 친구들을 언제쯤 볼 수가 있을까"란 가사를 외우며 "이런 가사는 정말 감동적"이라 평했다. 그 외에도 태지보이스의 활동 내용을 담은 <보이는 길 밖에도 세상은 있다>[* 1996년 4집 수록곡 'Taiji Boys'의 가사 중 일부. 이보다 앞선 1995년 1월 "다른 하늘이 열리고" 콘서트 당시에도 '길 밖에도 길은 있었다'라는 제목이 함께 고려되었다. 서태지의 음악세계를 관통하는 주제라고도 할 수 있다.]라는 책을 냈고, 인터넷 홈페이지를 운영하며 정기적으로 '무대의상 바자회'를 열어 사회 환원에도 힘썼다. 이들의 활동은 [[2000년]] 서태지 컴백 뒤까지 이어졌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